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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거스트 러쉬』는 선천적으로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지닌 한 아이가 부모를 찾기 위해 음악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는 여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음악 천재의 성장기나 미아 찾기 서사가 아닙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며 음악이 단순한 ‘소리’가 아닌, 기억과 정서를 연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정서적 유대, 그리고 천재성이 사회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길을 잃거나 발견되는지를 함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은 감정과 기억을 연결하는 ‘심리적 언어’입니다
주인공 에반은 음악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부모와 연결된다고 느낍니다. 그는 사람의 말보다 소리와 진동을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음악을 찾아냅니다.
심리학에서는 음악이 감정을 안정시키고, 기억을 회상하며,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는 연구가 다수 존재합니다. 실제로 음악 치료에서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외상 기억을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음악을 사용합니다.
에반의 경우, 음악은 그 자체로 생존 기제이며, 정체성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외부 세계와 연결되고, 동시에 자신 안의 상처를 마주합니다. 저는 이 과정이 단지 영화적 상상이 아니라, 감정의 표현을 배운 적 없는 이들에게 음악이 ‘언어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준다고 느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유대는 생물학보다 ‘정서적 공명’에 있습니다
에반은 부모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딘가에 그들이 있다는 직감과 그리움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영화는 이를 ‘음악적 유전자’처럼 묘사하지만, 저는 그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느낀 것은 ‘정서적 공명’입니다.
부모와 자녀 간의 유대는 단지 함께한 시간이나 지식의 공유만으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감’이라는 감정적 연결이 더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교육심리학에서는 이를 ‘애착감 기반 감정 반영 구조’라고 설명합니다. 즉, 생물학적 연결보다 ‘서로의 감정을 인지하고, 존중하며, 반영하는 관계’가 부모 자녀 관계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에반이 부모를 음악으로 찾는다는 설정은 사실상 그 유대가 존재했고, 끊어진 시간에도 불구하고 정서적 회로는 열려 있었다는 은유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이 영화가 전하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감동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천재성은 발견되기보다 ‘허락’되어야 합니다
에반은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지녔지만, 이를 처음부터 이해받거나 보호받지는 못합니다. 그는 음악을 무기로 삼는 거리의 인물에게 잠시 착취당하고, 제도권 학교에서도 처음에는 이해받지 못합니다. 이처럼 천재성은 항상 찬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조 안에서 ‘허락’되어야만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게 됩니다.
교육 시스템에서는 표준화된 기준과 평가 방식이 우선하기 때문에, 독특하거나 비표준적인 재능은 오히려 부적응으로 간주되기 쉽습니다. 영화 속에서 에반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정서적으로 안전한 환경과 열린 시스템 안에서는 단기간에 자신의 능력을 표현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허구적인 장면이 아니라, 실제로도 예술적 재능이나 창의성이 환경적 요인에 따라 억제되거나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천재성을 다룰 때 ‘특출함’을 강조하는 대신, ‘주어진 환경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더 초점을 맞춘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회는 ‘음악을 믿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영화 후반부, 에반은 자신이 작곡한 음악으로 무대에 서고, 그 음악은 마침내 부모의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이 장면은 매우 상징적인데, 단순히 재회라는 극적 효과가 아니라, ‘음악을 믿은 사람이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술적 열정이나 감성적 확신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예술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본질적인 경험 중 하나이며, 그것이 공동체와 사회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에반은 주변 사람들에게 “음악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지 이상주의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신을 설명할 수단이 음악밖에 없었던 사람의 생존 방식입니다. 저는 그 진심이야말로, 이 영화가 주는 가장 강력한 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거스트 러쉬』는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고, 상실된 관계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말합니다. 때로 인간은 논리보다 감정에 먼저 반응하며, 그 감정은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복원될 수 있다고 말이죠.
에반의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에게는 음악이 곧 삶’이라는 선언이자,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얼마나 간절한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감정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아주 조용히 가슴 깊은 곳을 울릴 것입니다.